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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담사연
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
- 작성일 : 2010-10-07
- 조회수 : 5822
- 작성자 :관리자
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
“우리 집 앞에 사람들이 자꾸 주차를 해서, 내가 집에 들어가지 못해요.
우리 집 양반이 시각장애인이라 자주 병원에 다녀야 하는데,
양심도 없이 우리 집 대문을 막고 주차한 차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.
다리도 불편한 내가 밤마다 집 앞을 지키고 있느라 너무 힘들어요.
차에 적어 놓은 번호로 몇 번이나 전화를 해도 아예 전화를 받지도 않아요.
할머니라서 무시하는 건지…”
앞을 보지 못하시는 할아버지와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의 사연을 들으며 내 마음 속에서 정의감이 불타 올랐다.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,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.
무단주정차는 도로에서만 단속 대상이 된다. 할머니 집 앞처럼 일반 골목길이나 이면도로, 거주자 주차구역에서의 무단주정차는 원칙적으로 단속 대상이 아닌 것이다. 게다가 지금은 밤이다. 구청으로 민원을 전달한다 하더라도 당장 도움을 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.
할머니께 이런 사실을 설명드리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.
“그럼, 나처럼 힘도 없고 돈도 없는 할머니는 계속 당하고 살라는 말이죠?
경찰도 도와줄 수 없으니, 그냥 참으라는 말인 거죠? 정말 억울하네요.”
순간, 정신이 퍼뜩 들었다. 지금 당장은 공공기관의 업무 시간이 아니라서 해결 방법이 없지만, 관계 법령 상 불법주정차 단속을 할 수는 없지만,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불편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. 나는 할머니께 정중하게 사과를 드린 뒤, ‘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드리겠다.’고 약속했다.
그 순간부터 나는 바빠졌다. 우선 할머니께는 해당 지구대에 신고하시는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 드렸고, 구청 담당자에게는 세세한 부분까지 할머니의 어려운 상황을 적은 데이터를 전달했다.
-시각 장애인인 할아버지와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께서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
집 앞 이면도로에 주차 공간 확보가 필요합니다.
그럼에도 할머니 댁 앞에 무단주정차한 차량 때문에 집안 출입이 어려운 상황이고,
차를 빼 달라고 전화를 하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
오랫동안 불편을 겪고 계십니다.
법령 상 지속적인 단속은 어렵겠지만,
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.-
다행스럽게도 즉각적인 대응이 이루어졌다.
“아이고, 아가씨, 고맙습니다.
아가씨 말대로 지구대에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,
경찰이 즉각 출동해서 무단주정차한 사람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어요.
게다가 구청에서 장애인스티커를 우리 차에 붙여 주었고,
집 앞에는 ‘장애인 거주 주차금지 표지’를 세워 줬답니다.
이젠 집 밖에서 주차 감시를 하지 않아도 돼요. 이게 다 아가씨 덕분입니다.”
할머니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, 나는 마음이 뜨끔해 졌다.
‘내가 이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?’
처음 할머니의 상황을 ‘귀’로만 들었을 땐 ‘단속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무단주정차’ 민원으로 분류하여 법령을 설명하면서 양해를 구한 뒤 상담을 종료하려 했다. 그러나 ‘마음’으로 할머니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자, 법이 아니라 사람의 도리로써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.
할머니 덕분에 좀 더 국민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이 뜨인 것이다. 오히려 내가 할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한다.
“할머니, 정말 감사합니다. 그리고, 할아버지와 함께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!”